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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초윤, 수채화로 담아낸 온전한 이해


《목련》 ©chochung7



Editor comment


힘들 때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은 지금의 나를 온전히 이해해 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닐까?


다른 사람의 주관적인 생각과 감정을 전부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유일하게 나를 전부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그 존재를 통해 위로받고 살아갈 힘을 얻는데, 백초윤 작가는 오롯이 나를 보듬어주는 유일한 사람인 '나'를 보여주는 작가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볼 필요도, 들을 필요도 없는 사람이 등장해 서로의 우울을 발견해 주고, 손을 잡고 춤을 추며 기쁨을 만끽하는 등 모든 감정의 순간들을 공유한다. 결국 나의 마음을 온전히 아는 사람은 '나'라는 사실이 오히려 큰 위로가 되기에 그의 작품은 나를 위한 훌륭한 치유제라고 할 수 있겠다.


들풀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나 발끝을 적시는 파도가 느껴지는 자연 속에서 '나'에게 위로받는 기분을 선사해 주는 백초윤 작가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Interview



백초윤


"1인칭의 마음을 온전히 알 수 있는 사람.

나 자신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작가와 작품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중인 백초윤이라고 합니다. 수채화를 기반으로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어요.




작가님의 시작이 궁금해요. 어떻게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되셨나요?

초등학생 때 혼자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거나 만화책을 보면서 시간을 많이 보냈는데, 책 속에 들어가서 외부와 단절된 상태를 좋아했어요.


어린이 코너의 동화와 소설 속 삽화들을 보면서 '나도 이런 그림을 그리는 직업을 갖고 싶어'라고 생각하면서, 머릿속에 펼쳐지는 이미지를 실체화시키는 일에 대해 매력을 느꼈거든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일러스트와 만화 쪽에 관심을 가지면서 중학교 때는 친구들과 만화동아리 활동을 했어요. 지금의 화풍은 그때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생각해요.


©chochung7



작가님께서 최근에 작업하신 작품 중 소개하고 싶은 작품을 알려주세요.

최근 포스터 북을 만들고 싶어서 작업했던 것 중 대사 없는 만화 작업이 제일 맘에 들어서 소개해 드리고 싶어요. 하수도로 흘러간 눈물이 바다로 가서 다시 나를 위로하는 내용을 담았는데요, 대사 없이 상황을 보여주는 이미지의 나열이 재밌어서 이런 식의 만화책을 만들고 싶어요. 그림을 그릴 때 제가 생각하는 방향을 가지고 작업을 하는데, 봐주시는 분들의 피드백이 너무나 다양했던 경험이 너무 좋았거든요. 보는 사람의 시선과 생각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작업이어서 좋아합니다.




수채화는 물감과 물의 농도로 그 순간의 느낌이 정해지기 때문에 과감하면서도 섬세한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실제로 작가님의 성격도 세심한 편이신가요?

앗 전혀 아닙니다! 평소엔 정말 성격이 급하고 흥이 많은 타입이에요. 이게 제 기질인 것 같고 작업할 때는 제가 가진 최대한의 집중력을 모두 끌어서 쏟아내는 식으로 작업해요. 평소에 ‘그런가 보다’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어도 다들 뭐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니깐, 아 저 사람은 그런가 보다 하고 웬만하면 넘겨요. 옐로카드가 많은 편이에요.


©chochung7



주로 그리시는 대상이 바다, 꽃, 나무, 하늘 등의 자연물이에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요소 하나하나 뜻이 담겨있는 것인지 궁금해요.

제가 원하는 ‘편안함’을 가진 자연물이라서 자주 등장하는 것 같아요. 물, 꽃, 식물, 하늘은 제 유년시절을 대표하는 상징들이기도 해요. 수영을 오래 했는데, 물속에서 수면 위를 올려다보거나 깊은 곳까지 잠수해서 위아래도 모르게 빙글빙글 돈다거나 하는 물속에 있는 자유로운 상태를 너무 좋아하거든요.


꽃이나 나무는 자라는 내내 할머니가 키우시던 식물들이 언제나 집 베란다와 마당, 옥상에 가득했기 때문에, 제겐 너무 당연한 것들이라 자주 등장하는 것 같아요. 가족이 많아서 혼자 있고싶을 땐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보거나 나무 위에 앉아있곤 했거든요.


전 사람들과 함께 있는 걸 정말 좋아하는데 작업에 몰입하여 특별함을 느끼는 상태는 외부와 단절되어 오롯이 혼자일 때여서요. 스스로 편안함을 느끼는 상태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 같아요.

©chochung7



작가님은 수채화의 어떤 매력에 빠지게 되셨나요?

불확실성인 것 같아요. 펜 작업처럼 어느 하나하나 부분을 완벽하게 제가 컨트롤하는 것보단 성격상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고, 또 마음에 들지 않게 나오더라도 '내 생각과는 다르게 이런 결과물이 나왔구나, 이건 이것대로 괜찮네' 하는 부분들을 마주하는 과정이 좋아요.


가끔은 손이 그리는 걸 구경하는 기분도 들어요. 생각한 것보다 잘 나오면, 와 너무 재밌고 기쁜 거고! 마음에 들지 않게 나왔더라도 좀 더 마음을 놓게 되는 점이 매력이에요.




작가의 가치관


작가님의 그림은 인물이 함께 등장해서 그런지, 단순한 풍경화가 아닌 이야기가 담긴 그림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작품을 그리실 때 메시지나, 이야기를 따로 생각하시나요?

전 평소에 제가 느꼈던 상황이나 감정들에 대해서 짧은 글을 그때그때 기록하곤 하는데 그 뒤 그 글들을 이미지화 시켜요. 모두 메시지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건 수필이기도 하고 소설이기도 해요.


《밀려오는》 ©chochung7


《작약》 ©chochung7


《깊은 우울》 ©chochung7



작가님의 그림에서는 두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것이 특징인데요, 이에 대해 ‘그림 속 인물들은 모두 한 명이다’라고 말씀 하신 것을 보았어요. ‘별다른 이야기 없이도 내 모든 걸 이해해 주고 감싸주는 내 편은 나뿐이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인상 깊었는데, 작가님께서 이러한 부분을 표현하기 위해 특별히 신경 쓰는 요소나 디테일이 있나요?

볼 필요도 들을 필요도 말할 필요도 없기 때문에 따로 이목구비 디테일을 표현하지 않습니다. 최소한으로 표현되어 보편성을 줄 수 있기 때문도 있어요. 인물을 더 멋지게 긍정적으로 표현한다거나 반대로 더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건 최대한 지양해요. 사실 내가 나를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이 깊이 공감되지 않음에서 오는 표현방식인 것 같아요. 전 타인을 생각하듯이 저를 비슷하게 생각하는데 제겐 나만이 알고 있는 주관성이 부여되잖아요. '나는 이래서 이런 행동을 했고, 이런 말을 했고'하는 1인칭의 마음을 온전히 알 수 있는 사람. 나 자신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작가님께서 기억하고 간직하고 싶은 순간들을 드로잉 하는 것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그림을 시작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을 말씀해 주세요.

평소의 작업과는 거리가 멀지만 여행 갔을 때 그 생각을 매번 해요. 내가 이걸 이렇게 기억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크로키하면서 저 부분 모서리는 이렇고 저 바위색은 저렇고 하면서 디테일하게 관찰하던 기억들이 그 순간의 감정까지 영상으로 기억될 때 눈앞에 선한 기분을 다시 느낄 때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작가의 성장


©chochung7



작가님께서 처음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작품은 무엇인가요?

나란히 누워있는 두 소녀가 실뜨기를 하는 작업이었어요. 원래는 영화의 팬아트였는데 좀 더 내 스타일로 바꿔 그려보자 하고 시작했던 그림이고 또 영화 제작진 측에서 연락이 와서 VOD로 제작될 때 그 그림이 함께 실리기도 했어서 정말 애착이 가는 작업이에요.



<연애의 이유>, <나무>, <걔>, <녹> 등의 만화뿐 아니라, <햇볕 냄새>와 같은 동화 작업도 하셨어요. 작가님의 일러스트를 보면서도 스토리텔링하는 능력이 참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야기를 만드는 일에도 관심이 많으신가 봐요?

네. 자전적인 이야기가 많지만 어릴 때부터 만화를 계속 그려왔고 학과도 그쪽으로 진학했어서 이야기를 만들고 쓰는 것을 좋아해요. 또 이걸 반복하다 보니 제가 긴 장편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보단 짧은 이야기들을 나열하는 걸 더 좋아하더라고요. 일러스트 한 장을 그릴 땐 머릿속에선 스토리나 대사, 짧은 글 들을 생각하며 작업하게 되었어요. 언젠가 모두 보여드리고 싶네요.


©chochung7



수채화에서 예기치 못하게 물감이 번지고 섞여나가는 과정처럼, 작가님의 인생에서도 생각지 못하게 새롭게 도전하게 된 경험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사는 곳과 사람들인 것 같아요. 전 평생을 지방 소도시에서 자라서 언젠가 서울 가서 살 거라는 원대한 꿈이 있었거든요. 가끔 제가 작은 사람 같고 손에 쥔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이 초라해질 때면 그래, 내가 여기 와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원하는 곳에서 살고 있잖아. 진짜 신기하다고 하면서 저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곤 해요. 시야가 넓어지는 경험을 해보니 해외 활동을 진행하는 계획을 구상 중인데 우물 안 개구리가 세상을 여행하고 있는 기분이에요.



클래스 101의 온라인 강의 뿐만 아니라, <수채화 원데이 클래스>와 같은 작법서도 내시고, 서울에 있는 작업실과 직접 운영하신 학원에서 오프라인 클래스를 진행하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스스로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가르치는 일은 전혀 다를 것 같은데, 이를 병행하며 힘든 점은 없었나요?

수업은 오히려 반대로 제게 너무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몇 년간 수업을 하면서 다양한 재료 기초나 인체 드로잉 등을 계속 반복하게 되었는데요, 제가 만들어둔 자료들이 있지만 학생분들의 취향이나 방향에 따라 세분화된 자료들은 모두 다르거든요. 머릿속에 있는 정보를 입으로 내뱉고 설명드리면서 전 더 확실하게 이해하고 학생분들이 다 다양하다 보니 응용까지 하게 돼요. 따로 시간을 내서 연습하지 않아도 수업하면서 저도 같이 배우는 시간이 되거든요. 힘든 건… 체력뿐인 것 같아요. 운동합시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과 작가님의 궁극적인 목표를 알려주세요!

올해는 아트북 쪽으로 작업하고 싶어요. 해외 전시나 페어도 참여할 거예요. 그리고 제 작업을 도자기 인형으로 조형작업을 해보고 싶습니다. 사실 지금은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지만 더 다양한 작업을 많이 해보고 싶어요. 만화도 다시 그리고 싶고, 동화책도 작업하고 싶고 제가 그린 그림을 조형으로 만드는 것에도 관심이 있고 100호 200호 만한 큰 그림도 그리고 싶어요.

저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사히 할머니가 되어 계속 그림을 그리는 거예요. 최대한 오래 많이 그림을 보여주고 싶어요.


사람들에게 어떤 작가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나요?

제일 어려운 질문이에요. 최근 몇 년간 목표는 그림에 제 인생을 다 쓰고 있는 절 발견해서 그림을 그리지 않더라도 한 인간으로서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거든요. 어떤 작가로 남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봤네요. ‘그 사람 진짜 꾸준히 작업하잖아’라는 말을 듣는 편이 제일 좋을 것 같아요.


TMI PARTY 🤹‍♂️



작가님은 ‘백초충’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시는데, 무슨 뜻인가요?

중학교 시절 미술시간에 초충도를 배웠는데, 친구들이 제 이름에 초자가 들어가는 걸로 '초충초충!' 하면서 놀리더라구요. 이름으로 놀림당해본 적이 거의 없어서 별생각 없이 "뭐래~"하고 말았는데, 옆자리에 있던 친구가 "야, 아무리 그래도 초윤이 이름에 초자가 풀 초(草) 자도 아닌데 왜 놀리냐"라고 하는 거예요. 근데 거기서 제가 풀 초(草) 자가 맞다고 했더니 반 애들이 다 빵터져서 그때부터 백초충이 되었어요.


그때는 SNS 대신 블로그를 하던 시절이라 블로그 닉네임을 백초충으로 정했었고, 자연스럽게 그 닉네임으로 여태 활동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본의 아니게... '~충'이라는 말이 안 좋은 뜻을 갖게 되면서 다들 조심스럽게 활동명에 왜 충이 들어가냐고 물어보시더라구요… 그래서 이젠 본명인 백초윤으로 활동할 생각이에요.


작가님이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전 물속에서 수영할 때가 가장 행복하고 좋아요! 그리고 저희 집 강아지랑 함께 있을 때가 좋아요



사랑스러운 천재 해피



작가님의 반려동물을 자랑해 주세요~!

해피라는 골든리트리버인 막내동생이 있어요. 올해로 7살이 되었는데 점점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이젠 어려운 문장도 알아듣고 낮 밤 개념도 알아요. '오늘은 낮에 안 나가. 이따 밤에 산책 갈 거야 어두워지면 나갈 거야'하면서 온몸으로 설명하면 정말 해가 지면 와서 산책 가 자해요.


예전엔 걸음마 하던 조카가 자기 눈 찌르고 귀찮게 하니까 복수로 화장실로 유인해서 문을 닫아버리리더라고요. 천재 같아요. 해피는 최고예요 제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존재예요.



작업을 할 때 말고 하는 작가님의 취미 생활이나, 요즘 빠진 것이 있나요?

뭔가 만들어내는 생산적인 취미를 정말 가지고 싶어서시작했던 게 자수였는데 작업할 때 쓰는 눈과 척추, 손을 또 혹사시킬 수 없어서 최근엔 누워서 웹 소설을 봅니다.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수영을 다녔을 텐데 정말 속상해요.




작가님의 그림에서 꽃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중에서도 작가님이 가장 좋아하는 꽃을 알려주세요

물망초 같은 작고 소중한 꽃도 좋아하지만 모란이나 작약 같은 묵직하게 박력 있는 꽃이 정말 멋있는 것 같아요. 그림과 사진으로만 보다가 동네 주민분이 심으신 모란을 봤는데요 와 엄청나게 크고 진짜 최고로 멋지더라고요. 그때 약간 압도되었어요.


©chochung7



작가님께서 실제 종이 위에 드로잉 하신 작품들은 어떻게 보관해 놓나요?

소중하게 열심히 그린 큰 사이즈의 작업들은 빛이 닿지 않게 포트폴리오 북에 넣어두고 아닌 애들은 대부분 작업실 벽에 붙여둡니다. 가끔 원하시는 분들이 문의하시면 판매하기도 해요.

작업과정



수채화 작품을 그리며 실수하는 순간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럴 때 작가님께서는 어떻게 대처하시나요?

전 그림을 똑똑하게 잘 그리던 아이가 아니었어서… 수습하다 보면 완성하는 과정을 꽤 오랫동안 반복해 왔거든요. 이건 그림을 그리는 건지 수습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 무계획적으로 감으로만 그려와서 지금은 어디를 어떻게 해야 원하는 이미지로 나올지 감이 오지만 아직도 긴장될 때는 있어요.


멀리뛰기하는 느낌이랑 비슷해요. 어떤 기록이 될지 실수할지 모르지만 일단 뛰는 기분으로 붓을 갖다 대는데 이미 수습엔 도가 터서 당황은 잘 안 하고 이렇게 나왔네..? 하고 순응하는 타입이라 그저 재밌습니다.


실수라면 커피를 쏟은 적이 있었는데 그냥 그 그림은 버리고 새로 작업했어요. 작업하다가 날려도 화난다거나 하진 않고 그냥 바로 새로 시작하는 편이에요. 그에 후회하고 스트레스받고 있으면 정신력과 시간이 더 소모돼서 현실도피처럼 '허허' 웃고 잊어버리고 다시 합니다.



작가님의 그림을 세가지 키워드로 표현한다면?

쉼, 번짐, 대비





#백초윤

#백초윤 인스타그램 @chochung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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