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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주, 빛을 머금은 위로

최종 수정일: 3월 17일


©firecrackercity


Editor comment


빛은 쨍하게 우리를 내리쬐다가도 어느 순간 부드럽게 우리를 감싸주는 존재가 된다. 박인주 작가의 그림은 꼭 그런 빛의 성질을 닮았다. 적막하고 쓸쓸함을 담은 그림이 주는 강렬함에 압도되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와 눈빛에 오히려 따스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박인주 작가가 그려 내는 예술의 생태는 차갑고 쓸쓸했던 계절 속에서 빛을 가득 머금은 따스함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는 것 같았다.


특히 한 단어, 한 단어 고심해서 골라내어 완성했을 박인주 작가만의 독특한 문체는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이미지와 단어가 연계된 고리를 날카롭게 짚어내기에 감상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늘 꿈같은 그림을 그려왔던 작가이기에, 잊혀진 꿈들이 잠들어 있는 호텔을 방문하는 이번 프로젝트인 《꿈의 유실물》이 더욱 기대되는 바이다.


이번 early 인터뷰에서는 조각조각 공을 들여 완성하는 나전처럼 특유의 영롱함을 머금은 작품을 만드는 박인주 작가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Interview




박인주


"개인적으로 삶 전반에 자리 잡은 빛과 겨냥이

정확한 시선과 중화된 분위기로서

작품에 드러나게끔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작가와 작품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작업자 박인주입니다. 주로 일러스트레이션과 글 작업을 하고, 최근 3년 동안은 독립출판을 위주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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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 인물과 눈이 마주칠 때가 많아요. 무표정에 가까운 인물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작게 마음이 일렁이면서 위로를 받기도 하는데, 인물의 표정과 시선은 의도하신 것인가요?

이상하게 개인 작을 할 때는 표정 그리는 것에 재미를 느끼지 못해요. 중의적인 표정과 전체적인 분위기로 심상을 드러내는 편이 더 좋아요. 사실 인물의 형태로 그림 안에 들어가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림은 살아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화폭에 담기는 순간 무엇이든 한번 사물화된다고 생각해요. 눈빛은 알기 쉽게 표시한 지표이고요.




인물의 눈을 묘사하는 방식이 참 좋아요.

시선은 그림을 뚫고 나가는 창이라 생각해요. 불행은 사람의 기본값이 되기 쉽지만, 정확히 겨냥되는 빛은 삶의 궤도를 더 나은 쪽으로 끌어내며, 불행한 기질도 부드럽게 소화해, 중립적으로 만들 힘을 지니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삶 전반에 자리 잡은 빛과 겨냥이 정확한 시선과 중화된 분위기로서 작품에 드러나게끔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작품에서 유럽 고딕풍의 느낌과 동양 토속 신앙의 특유의 분위기가 동시에 느껴지는 것이 특이해요. 이러한 분위기는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나요?

아주 어릴 때부터 옛날 신화나 건물 등에서 오는 이야기와 심상을 사랑했어요. 동양의 설화들과 서양의 신화들처럼, 아직 미지로 남아있는 것들에 대한 옛사람들의 무궁한 상상력과, 소박한 물건 하나에도 미처 다 알지 못하는 시절이 숨어져 있다는 것에 몸이 떨리곤 했으니까요.


그처럼 그림도 세월의 흔적과 미지의 영역이 감각되게끔 그리고 싶었어요. 지나온 시간들 중에서 우리가 미처 정확히 짚어내지 못했던 시절의 정서를 아껴두었다가 하나씩 펴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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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접어놨던 삶의 귀퉁이를 펴낸다’고 표현하신 걸 보았어요. 과거의 기억들을 완전히 마주한다는 의미 같기도 한데, 작가님에게 그림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요.

이를테면, 책 귀퉁이를 접어놓으면 나중에 좋아하는 구절들을 쉽게 찾을 수 있듯이, 예술은 특정한 정서를 찾을 수 있는 약도가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작업을 해나가면서, 불행한 기질을 중화시키고, 시절들의 주요한 곡점들을 짚어내 빛으로 풀어내가는 방식으로 제 삶의 귀퉁이를 펴내고 있습니다.

<유령꽃>에서 상실에 대한 이야기를 책의 형태가 아닌 편지의 형식으로 풀어낸 연출이 정말 특별하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아이디어는 어떻게 생각하신 것인지 궁금해요.

우리가 특정한 대상을 잃었을 때 대상이 사라진 공간과 만나고, 관계하다 마침내 그 존재감마저 사라져야 상실이 완결된다고 생각해요. 때로는 그 존재감이 끊임없이 같은 장소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내더라도요.


그런 의미에서 첫 번째로 그러한 상실과의 관계성이 실재하는 누군가와의 관계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두 번째로 부재와 관계하고 체화하는 제 방식을 이야기로 구조화해서 제시하고 싶었어요. 그 과정에서 상실한 대상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걸고, 풀어나가는 방식으로 편지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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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유실물>이라는 개인 프로젝트를 준비 중에 있다고 들었어요. 어떤 내용인지 살짝 공개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사람들이 잊어버린 꿈들은 어디로 갈까요? 내 몸은 현실에 있는데, 꿈속의 나지만, 내가 아닌 그 몸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꼭 꿈을 꿀 때마다 매번 나는 모르는 삶을 체험하는 기분이지 않나요?


잊혀진 꿈들이 잠들어 있는 호텔이 있고, 거기에서 누군가 잊은 꿈들이 남겨져 있다고 가정해 보았어요. 언젠가 정말 겪었던 것 같은 이야기가 담긴 몸이 꿈속 호텔로 걸어가 여러분의 손안에 쥐어지는 프로젝트입니다. 단기적으로는 꿈속에서 태어난 물건들과 이야기들을 팔고, 장기적으로는 꾸었거나, 꾸고 싶은 꿈을 주문도 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어요.


‘잊혀진 꿈들이 잠든 호텔’이라는 초현실적인 요소가 매우 인상 깊어요.

아주 어릴 때부터 꿈을 남들보다 자주 꾸고, 잘 기억하는 편이었어요. 서사가 있는 꿈도 많았고, 하나의 이야기나 장소를 여러 꿈에 걸쳐 다시 본 경험도 많아서, 친구들에게 들려주면 영화나 소설 같다는 이야기도 들었고요.

예를 들어 며칠에 걸쳐 꿈에 사는 연인과 교제하다, 마지막 꿈에서 그 친구가 “이번 꿈에서 깨어나면 날 잊을 거잖아.”라고 울면서 화낸 적이 있는데, 정말 그 이후로 그 친구 꿈을 꾸지 않았어요. 이런 꿈들을 꾸고 나면 깨고 나서도 이상하게 상실감이 들어요.



작가님께서 꼽는 이번 프로젝트의 감상 포인트가 있을까요?

초반에는 우리가 현실에서 감각하는 것과는 시간도, 물성도 다른 꿈이라는 성질을 구현해보는 것에 초점을 맞췄으며, 2부(201호부터)는 조금 더 사회적으로 지향해나갈 꿈을 구현해보고 싶은데, 제 역량이 그만큼 커질지 아직은 모르겠어요.

우선은 부담 없이 눈으로 꾸는 꿈이라고 생각하고 감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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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구름 그리미>와 단편소설 <유령꽃>에는 마음을 어루만지는 문장들이 많아요. 글을 쓰실 때 특히 유념하는 부분이 있나요?

글쓰기는 저에게 폐쇄적이고, 오랜 시간 동안 솔직함이 용납되지 않아 왔던 창구였기 때문에 발화 구조가 많이 꼬여있는 상태였어요. 그래서 말씀하신 두 작품에서는 교정 교열해 주는 친구에게 잘 전달되게 풀어쓸 수 있게끔 도움과 피드백을 많이 받았고, 한동안 전달력 있게 풀어쓰는 것에 가장 유념했던 것 같아요.

다만 <꿈의 유실물>부터는, 다른 친구에게서 제 글의 장점은 쉽게 소화되는 것이 아닌, 독특함과 문장력에 있으니 이젠 강박을 좀 더 버려도 괜찮을 것 같다는 충고를 듣고 좀 더 자유롭게 글을 쓰고 있어요.



작가의 가치관


J.M 바스콘셀로스의 소설 <햇빛 사냥>이라는 책 제목에 영감을 받아 그리신 그림을 보았어요. 추상적인 것을 시각화하는 능력이 정말 뛰어나신 듯해요. 추상적인 단어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특별한 과정이 있을까요?

단어를 시각화한다기보다는, 이미지와 단어가 연계된 고리를 짚어내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글도, 이미지도 평소에 많이 받아들이고, 많이 만들어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추상적인 것을 소화해내는 과정도 다듬어졌어요. 특별한 과정이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자주 그 연계에 대해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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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김에, ‘소거 당해버린 시선’, ‘식물의 날숨’, ‘석양 한 모금’ 등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단어들의 조합이 낯설기도 하지만 이보다 더 작가님의 그림을 잘 표현할 수가 없는 것 같아 제목과 작품을 함께 보는 재미가 있어요. 평소 이러한 표현들을 따로 기록해 두곤 하시나요?

생각이 정말 많은 편이라, 보통 주요한 문장들은 작업 노트로 많이 옮겨놓고, 거기에서 나온 이미지를 그려나갈 때도 많은데요, 그렇다 보니 그림을 그리는 동안 머리가 정말 시끄러운 편이에요. 그려나가는 과정에서 그림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마지막 즈음에는 꼭 문장이나 단어로 결론을 내리는 편이고, 보통 그렇게 제목을 지을 때가 많아요.




작가님께서 직접 촬영하신 사진도 그렇고, 작품도 그렇고, 빛이 피사체를 비춰 반짝거리는 그 찰나의 순간을 잘 담아내시는 것 같아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그런 순간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사진은 순간을 담는 화분이라 생각해요. 가변적인 순간을 잘 잡아내면 시절의 은유가 되고, 되돌아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장치가 되어요. 특히 좋아하는 순간들을 잡아내다 보면, 그 시간이 만들어질 수 있는 과정도 체화할 수 있게 되고요. 그 감각을 무척 사랑해요.





작가의 성장



과거의 그림은 쌀쌀한 바람이 부는 시린 겨울 같은 느낌이라면, 최근의 그림은 적막한 분위기는 그대로면서도 과거보다는 더욱 빛을 머금고 있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어떤 변화가 있으셨나요?

예술을 지향해 나가다보면 마음속에서 자생하는 생태가 생기기 마련이잖아요. 예전에는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위로를 스스로 자아내 살아나가고 있음을 느낄 때, 성장과 행복을 느껴요. 저를 사랑해주는 친구들이 생겼고, 제가 쓸모를 다 할 수 있는 곳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그림에도 한결 여유가 생겨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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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 올려주신 초등학생 때 작성하신 글이 정말 인상 깊었어요.

솔직히 생각보다 글이 반응이 좋아서 당황스러웠어요. 지금에야 제 감성을 개성으로 생각해 주시는 분들이 많지만, 당시에는 솔직하게 쓰면, 혼나기도 많이 혼났고, 제 기분을 글로 담으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여겨지기까지 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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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과 다르다고 느꼈던 순간들이지만 오히려 지금의 작가님을 만든 과거의 모습은 무엇이 있었나요?

남다른 무언가가 저를 만들었다기보다는, 또래 친구들에게 자주 소외되어서 힘든 시기에 유일하게 제 생각을 쓸 수 있는 창구가 글과 그림이었고, 그때 찾은 창구가 학창 시절 내내 저를 지키는 정체성으로 다듬어지고 유지된 거라고 생각해요. 자라나며 그 창구가 아주 느리게 사람들이 저에게 호감을 느끼는 계기가 되어갔고요. 솔직히 그 변화가 아직까진 저에게 이상한 기분을 들게 해요. 저는 언제나 저였으니까요.


작가님께서 표현력이 뛰어나신 것처럼 작가님의 팬분들도 작품에 대한 자신만의 감상평을 감각적인 비유를 통해 남겨주시기도 해요. 기억에 오래도록 남았던 표현이나 응원이 있나요?

유독 장문으로 깊이 있는 감상을 써주시는 팬분들이 많아서 창작자로서 자주 기쁨을 느껴요. 당장 떠올려보자면 어떤 부분에서 울컥하거나 눈물이 났다고 말해주는 감상들, 제가 6, 7년 전에 그린 동화나 글과 그림까지 섬세히 묘사하시면서 저를 찾아주시는 분들, 제 커미션 비용이 너무 싸다고 돈을 더 송금해 주신 분, 전시를 보러 제주도에서 찾아오신 분, 초반에 제 업무적 서투름을 이해해 주시고, 이후로 몇 년간 저를 응원해주신 분 등이 기억나요. 그 외에도 자주 촘촘한 감상을 말해주시던 몇몇 분들은 시간이 많이 지나도 생각이 나더라고요.




작가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작가로서는 외주 업계에서 돈이 아깝지 않다거나, 일을 잘한다는 말이 들린다면, 그게 가장 좋을 것 같고요. 대중에 관해서라면 아직은 작가보다는 작품으로서 더 기억되고 싶어요. 저와 작품과의 관계와, 독자와 작품과의 관계는 별개이고, 사람들이 작품과 본인이 아닌 저의 의도에만 치중해 제 작품을 읽게 된다면 그건 제가 잘못 만든 거라고 생각해요.


그저 작품들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정서에 약도가 되기를, 그리고 그게 선한 영향력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TMI PARTY🤹‍♂️




작가님의 평소 성격이 궁금해요. 작가님 그림이 주는 분위기처럼 섬세한 성격이실까요?

주변에서 작품과 분위기가 비슷하다고들 해주곤 해요. 일 때문에 사회성이 필요하거나, 친한 친구와 함께라면 수더분하고 떠들썩한 분위기도 잘 끌어내지만, 보통은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는 혼자 취미 생활을 즐기는 것을 선호해요.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시기도 하고, 실제 풍경들이 그림의 모티프로 사용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작가님이 좋아하는 장소를 묘사해 주세요!

본가 근처의 새때가 날아다니는 넓은 강물과 휘몰아치는 나무 군락, 인천에 살 때 집 근처에서 본 나무의 사계와 넓은 평야 위로 희게 드리워진 안개 속 일출, 그 옆 담쟁이 덩굴로 뒤덮인 폐공장. 선유도나 서울숲처럼 버드나무가 물 위로 머리카락을 드리운 곳들 같은 곳들을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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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만의 시선이 담긴 사진을 SNS에 공유해 주시는 것이 좋아요. 엽서나 포스터를 제작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사진을 판매하기에는 아직 제가 기술적 역량이 모자라요. 지금 사진은 그림의 정서적 스케치나 소스처럼 활용하고 있고, 무엇보다 낡은 아이폰으로 모든 사진을 찍기 때문에, 일단 마음먹고 좋은 카메라를 사게 된다면 다시 생각해 보려고 해요.



음악과 함께 작품을 보고 싶다는 분들을 위해 전시에서의 플레이리스트를 추천해 주셨는데, 작품의 분위기와 잘 어우러져서 좋았어요. 이번 인터뷰 질문지를 작성할 때도 작가님이 선정하신 플레이 리스트를 들으며 작성하니 작품에 더 몰입되어 좋았구요. 작업하실 때나 평소에 들으시는 음악이 또 있으시다면 알려주세요.

음악은 다양한 장르로 얕고 넓게 듣는데요, 작업할 때는 보통 영화 음악이나 현대 클래식, 혹은 피아노나 첼로 연주곡을 듣고, 인디 포크 계열이나 해외 팝 계열은 부르는 것도 듣는 것도 좋아해요. 신나고 싶을 때는 펑키나 그런지를 주로 듣고, 커피 마시면서 뭔가를 읽을 때는 재즈를 좋아해요.


3년간 꾸준히 자주 들으며 좋아했던 곡을 하나만 꼽자면 'faye'의 'screams and dreams'에요. 듣는 것도, 부르는 것도 가장 좋아하는 곡이에요.






#박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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