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남수르, 누군가의 인공정원을 그리다

최종 수정일: 7월 8일



남수르


"S는 전혀 연락이 닿질 않지만

당신의 기억 속에서 선명하게 남아 있는 사람일 수도 있고,

지금 내 곁에 있어도 그 사람이 변함으로써

기억에만 남아있는 사람일 수도 있어요."




EDITOR COMMENT


어떻게 우리는 모두 다른 생각을 하는데도 '노란색' 하면 모두가 생각하는 고정적인 색을 떠올리게 된 것일까? 남수르 작가의 그림은 그 틀을 무너뜨리는 것에서 시작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낭만적인 소재로 일상에 위로를 전한다. 마치 누군가 꿈꾸던 순간을 잘 다듬어 놓은, 하지만 현실과는 다른 감각을 공유하는 장소인 '인공정원' 같다고 해야 할까?


'예술이 대중에게 멀어지는 것'을 경계하는 남수르 작가와의 만남은 주로 ‘대중’의 입장이었던 에디터에게 공감 가고 반가운 이야기로 가득한 시간이었다.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S'라는 존재는 특히 대중과 예술을 잇는 접점이 된다. 작품에 대한 즐거운 대화가 오가는 인터뷰를 통해, 독자들이 S는 누구인지 곱씹어 보는 색다른 재미를 느껴볼 수 있길 바란다.




____

일러스트와 회화, 그 경계에 서다


안녕하세요 남수르 작가님! 자유롭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예술과 일러스트의 경계를 없애는 작업을 하고 싶은 작가, 남수르 입니다.




‘예술과 일러스트의 경계’에 관한 이야기는 많은 작가분들이 공감할 부분 같아요. 특별히 이 주제를 다뤄야겠다고 생각하신 계기가 있을까요?

흔히들 회화를 ‘하이 아트(High Art)’라고, 일러스트는 '로우 아트(Low Art)'라고 하잖아요. 대학에 오고 ‘좋은 작업물’이라 불리는 그림을 예술가와 평론가만 대단하다고 이야기하는 게 늘 아쉬웠어요. 그렇게 좋은 작품을 대중과 소통하고 교류하려 하지는 않으면서, 그들만의 리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달까요?


저는 동양화과를 나왔는데, 전공생인 저조차도 그렇게 느낄 정도면 일반 대중에게는 회화가 얼마나 어려울까? 라는 생각을 했어요. 당장의 저조차도 어릴 적에 전시를 많이 다니지도 못하는 등 ‘하이 아트’라고 불리는 예술과는 접할 기회가 많이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스무 살 때부터 막연하게나마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남수르



서울 일러스트레이션 페어에 꾸준히 참여하고 계신 것도 대중과 더 가까이 있고 싶다는 마음과 관련이 있을 것 같아요.

항상 대중을 만나고 싶다는 갈증이 있었던 것 같아요. 말씀드렸다시피, 대중들은 잘 모르는 작품을 예술가와 평론가만 좋다고 이야기하는 게 늘 답답했으니까요. '대중들에게 그림을 보여줄 기회가 있다면, 일단 나가보자’고 생각해서 19년도부터 일러스트 페어에 나가 대중과 직접 만나기도 하고, 제 작품을 함께 보며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어요. 그리고 작년부터는 점점 기반을 다지게 된 것 같아요.




입시미술에 대한 두려움이 있으셨다고 들었는데, 미대 입시를 준비하던 당시의 이야기가 궁금해요.

제가 10대 때까지는 꼭 '보통'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어요. 고등학생은 대학을 가야 하고, 대학생은 졸업하면 꼭 사회에 나가 일을 해야 하고, 나이가 차면 결혼을 해야 하는 것이 보통이라면, 그 보통의 삶을 살아야 할 것만 같은 강박이 있었던 거죠.


그런데 그 당시의 저는 잘 하는 게 미술밖에 없었고, 다음 단계의 '보통'이 되려면 대학에 꼭 진학해야 한다고 생각했었으니, 그림으로 대학을 가야 한다는 판단이 섰어요.


그 이후 입시 학원에 등록해 그림을 그리게 됐는데, 정말 저랑은 안 맞더라고요. 하하. 우리나라 입시는 기술적인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잖아요. 얼마나 실사처럼 그리는지만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평가도 너무 까다로워요. 이 그림은 그림자가 잘못 그려졌으니 감점, 색감이 어떠니 감점... 그런 평가를 당하는 것이 너무 무서웠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제가 잘하고, 할 수 있는 것이 미술이라 지금까지 오게 됐네요.




____

동화적인 작품 속에 담긴 이야기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초기부터 다채로운 색으로 화면을 구성하신다는 점이 눈에 띄는데요, 언제부터 이러한 스타일을 가지게 되셨나요?

처음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 입시를 할 때도, 일반적인 색감에서 벗어났던 적이 많았고요. 노란색을 칠하라고 했을 때면 형광기가 있는 노랑을 칠해 선생님께 "남들이 생각하는 노랑을 칠해야지!"라고 혼이 나곤 했어요. 이런 제 특성이 대학교에 가서 그림을 그릴 때도 바로 드러났던 것 같아요. '고유의 색감이 일찍 잡혀 있다'라고 얘기해 주시는 걸 많이 들었어요.




작가님께서 가장 애정 하는 작품이 무엇일지도 궁금해지네요.

2020년도에 완성한 <토끼와 여인들>이라는 작품입니다! 피카소의 <아비뇽의 여인들>을 오마주 한 작품이자, 처음으로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작업을 한 작품이에요. 묘사가 너무 자세하다 싶으면 그리다 덮고, 또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 다시 덮고.. 그동안에는 항상 대학원의 평가 기간에 맞추어서 작품을 제출하곤 했는데, 이 작품은 마감이라는 압박 없이 저만의 속도로 그렸어요. 그래서인지 색감 면에서도 만족스럽게 표현되기도 했고, 지금까지 작업할 때와는 또 다른 마음가짐으로... 정말 긴 시간 동안 그림을 쳐다보며 ‘쟤를 어떡할까…’라는 심정으로 열심히 작업한 그림이라 더 애착이 가는 작품이에요.



<토끼와 여인들> ©남수르



아무래도 오랜 시간 옆에 두고 그렸다 보니, 그 작품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실 것 같아요. 작품 분위기도 무척 독특한데요, 어떤 내용인지 소개해 주세요.

그림 속 장면은 S를 찾으러 가던 인물이 토끼의 장례식이 열린 것을 보고 함께 애도하는 상황이에요. 4명의 인물들 중 어떤 사람은 관조하듯 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딴짓을 하는 등 각기 다른 태도를 취하고 있죠. 어떤 태도로 장례식을 바라보는지를 넘어서, ‘작은 죽음’이라고 여겨질 수 있는 토끼의 장례식에 참석한 인물들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제가 어릴 때부터 그런 것에 예민했거든요. 가끔 새들이 유리창에 부딪혀 죽어 있거나… 쥐가 길 한복판에 죽어 있거나 하면, 가지고 있던 가정통신문 종이 있죠. 그런 재생지로 집어서 태워 주곤 했어요. 이런 일들은 사실 누구나 마주할 수 있잖아요. 그냥 스쳐 지나간다면 지나갈 수도 있는 죽음이지만, 그런 죽음에게 ‘안타깝다’는 생각쯤은 한 번 할 수 있기를 바랐어요.



<S를 찾아서 series> ©남수르




그렇지 않아도, 말씀해 주신 <토끼와 여인들>뿐만 아니라, <S를 찾아서>라는 작품에서도 S가 등장하더라고요. S는 어떤 의미인가요?

맞아요. 두 가지의 의미가 있어요. 저에게의 S가 있고, 타인들에게 받아들여졌으면 하는 S가 있어요. 저에게 S는 아버지예요. 단순하게 아버지 이니셜에 S가 있어서요. 하하, 심플하죠.


어느 날 아버지가 타의에 의해 돌아가셨는데, 당시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며칠 뒤에 알게 되었어요. 어떻게 발생하게 된 일인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아무 정보도 없었죠. 주변 가족이나 경찰에 연락을 해보아도 원인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직접 증거를 쫓아다녔던 경험이 있어요. 자료를 하나하나 쌓고… 그야말로 S를 찾기 위한 여정이었던 거죠.


<S를 찾다> ©남수르



제 작품 중에 <S를 찾다>라는 그림이 있어요. 결국에는 S를 찾은 거죠. 그렇지만... 영안실에서 아버지를 마주했을 때 저는 '이건 아버지가 맞지만, 아버지 같지 않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흉터도 같고, 본인이 맞는데도 너무 차가워서 꼭 본인이 아닌 것 같은 느낌. 그 싸늘했던 기억이 녹아있는 그림이에요.


저에게 S는 아버지이지만, 타인에게 S는 다른 의미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S는 전혀 연락이 닿지 않지만 당신의 기억속에서 선명하게 남아 있는 사람일 수도 있고,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변함으로써 당신의 기억 속에만 남아있는 사람일수도 있어요. 각자의 기억 속에 있는 사람을 추억해 봤으면 좋다는 의미로 S를 설정했어요. 그래서 그림을 보시는 분들이 S에 대해 물어보시면 ‘여러분에게 S는 누구나 될 수 있다’는 식으로 설명해주죠. 저는 정말 괜찮아도, 듣기에 너무 무거운 이야기는 듣는 사람에게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S를 따로 설정한 것이기도 해요.



____

대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대중이 선호하는 그림과 스스로 만족할 만한 그림 사이에서의 고민은 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작가라면 누구나 가질 수밖에 없는, 필연적 고민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가장 고민되는 부분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저는 이제 이렇게 생각해요. '대중들이 좋아해 주시면 좋고, 아니면 말고.' 애초 제가 제 그림에 쉽게 만족하는 편이 아니기도 하지만, 제 그림을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계시기에 더 힘을 얻곤 해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스스로 만족할만한 그림을 그리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다른 고민이 있다면, 저는 일러스트와 회화의 경계에 있고 싶은데... 이 부분이 여전히 어렵네요. 아직은 머무르고 있는 단계인 것 같아요. 대중들이 가장 익숙해 하는 것도 웹툰 형식이나 애니메이션 형식인 것 같아서 그림에 만화적 연출을 쓰기도 하고요. 제가 대중에게 더 많이 다가가야 대중이 다른 작가의 작품에도 관심을 가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요.



<S를 찾아서 series> ©남수르



이번 2021 서울 일러스트레이션 페어와의 인터뷰에서 작가님의 작품을 ‘존재하지 않는 마음속 인공정원’이라고 표현해 주셨어요. ‘인공정원’이라는 단어가 독특한데,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인공정원’이라는 단어는 제 대학원 동기 단춤 작가와 편지를 쓰며 교류를 하던 중 나오게 된 단어인데, 그 단어가 제 작품과 굉장히 잘 어울린다고 말해주더라고요. 그래서 기억에 남아 저도 인용의 말로 사용하게 되었어요. 정원이라고 하면 자연이 가득한, 정말이지 자연적인 이미지가 생각나지만, 사실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공간이잖아요. 이미 인위적인 공간인 ‘정원’에, 한 번 더 센 단어인 ‘인공’을 붙여 강조를 한 거죠.


저는 제가 항상 겪고 있는 것들을 그리고 있지만, 막상 그림에는 토끼의 장례식이라든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낭만적인 것들이 표현되잖아요. '인공정원'이라는 단어로 제가 그리는 것들에 대해, '이건 사실 인공적인 것이야'라고 명확하게 말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품을 업로드하실 때, 작품과 함께 써주시는 코멘트들이 인상적이에요.

제목만 달기에는 부족하고, 그렇다고 글로 장황하게 코멘트를 다는 것도 너무 설명적일까 걱정을 많이 하곤 했는데, 감사한 피드백이에요.



<In The Bed> ©남수르



그중에서도, <In The Bed>라는 작품과 함께 업로드하신 ‘숨기는 데에 익숙해져 편안한 침대 위에서도 표정을 짓지 않는 우리들’이라는 코멘트가 정말이지 너무 좋았어요. 침대 위에서 정말 많은 생각을 하지만, 표정은 무표정인. 공감이 되어 너무 좋더라고요.

네, 맞아요. 침대에 누워서 혼자 핸드폰으로 웃긴 것들을 보면서도 표정은 정색을 하고 있을 때가 많잖아요. 분명 재밌다, 웃기다고 생각하고 있는 데도요! 그런 모습을 담아봤어요. 하하.




앞으로 꼭 작가로서든, 개인으로서든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으신가요?

작은 목표로는, 책의 삽화나 표지가 되는 일러스트를 작업해 보고 싶어요. 앞으로의 큰 목표는… 모두의 꿈일 테지만, 그림 레지던시에 참여해보고 싶어요. 작업실도 대여해 주고, 평론가도 붙여 주고... 상상만 해도 너무 즐거워요!




사람들에게 어떤 작가로서 기억에 남았으면 좋겠나요?

어려운 질문이지만, 작가로서 꼭 생각해 봐야 할 질문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작가로서보다는, 그림으로 기억에 남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제 이름을 말할 때 ‘아, 그 작가?’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정도가 된다면 좋겠어요. 그 말의 뜻이 ‘별로다’여도 좋고, ‘좋다’는 의미여도 좋아요.




TMI PARTY 🤹‍♂️


남수르라는 이름으로 활동명을 결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만수르와 관련이 있나요?

만수르와... 관련이... 있습니다! 제가 남 씨에다, 충동구매를 좋아해서 친구들이 남수르라는 별명을 붙여 줬어요. 또 제가 사주를 좋아하는데, 제 사주에 물이 부족해서 물을 채울 수 있다면 좋다고 하더라고요. "남수르의 수가 물 수(水)면 되겠네!" 싶어서 그 별명을 활동명으로 정하게 되었답니다. 페어에서 제 이름을 보시고는 웃으면서 지나가시는 분들도 있었어요. 하하.




실제 성격도 과감하실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네. 정의감이 있는 성격이라고 해야 할까요? 잘못된 것, 부조리한 것이란 생각이 들면 토론을 통해 잘 이야기하려 해요. 언뜻 저를 보면 누군가와 자주 싸운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요… 제 생각을 표현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는 편이에요.



귀여운 고양이 동글이




동글이의 이름은 왜 동글이가 되었나요? 자랑도 함께해 주세요!

동글이라는 이름은 보호소에서 지어 준 이름인데, 너무 잘 어울려서 그대로 동글이라고 불러 주고 있어요. 동글이 자랑이라... 동글이는 너무 귀여워서... 너무 귀여운 게 많아서 얘기를 못하겠어요. 질문이 너무 어지러워요. 표현을 어떻게 못하겠어요...!



2021 서울일러스트레이션페어 세라믹 굿즈 ©남수르




이번 2021 서울 일러스트레이션 페어에서는 어떤 작업물을 가지고 오시나요?!

페어에 나가는 건 수익보다는 홍보를 위한 목적이 크기 때문에, 이번에는 도자 뱃지를 저렴하게 판매하려 하고 있어요. 도자기에 그림을 그린 보석함도 있고, 패브릭 포스터, 코스터, 스티커 등을 준비하고 있으니 많이 기대해 주세요!




작가님의 작품을 세 가지 해시태그로 나타낸다면?

사실 이 부분은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결정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만… 꼽아보자면 인공 정원, 어른들의 동화, 환상적.


____


early interview

남수르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