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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배, 공간이 품고 있는 이야기


©4kimbobae


Editor comment


오랜 세월을 겪었을 건축물이나,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친 낡은 물건을 보면 그것들이 품고 있는 역사가 무엇일지 궁금해질 때가 있는데, 김보배 작가는 바로 이런 '시간을 품은 것들'에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을 그려내서일까, 그의 작품 전반에서는 한국적인 정서가 물씬 느껴진다. 오래된 인쇄물에서나 볼 법한, 망점이 듬성듬성 드러나는 채색과 특유의 질감도 눈에 띄는데 이런 요소로 ‘시간의 흔적’을 알 수 있다는 점이 특히 재미있는 부분이다.

김보배 작가의 작품은 한 번 보고 그냥 지나치기 보다 그 안에 숨겨진 이야기를 마음껏 상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찬찬히 들여다볼수록 이야기가 피어나는’ 그림을 그리는 김보배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Interview



김보배


"표현은 다양할 수 있어요.

다만 지키고 싶은 한 가지는

보면 볼수록 이야기가 피어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점이에요."




작가와 작품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그림을 그리고 책을 만드는 김보배입니다.



작가님께서 작업하신 작품 중 제일 애정하는 작품을 소개해 주세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풍경빌라’ 연작들인데요. 제가 사는 오래된 연립주택을 모델로 그린 집과 방 그림이에요. 평소 관심 있는 주제가 일상의 흔적이 담긴 풍경이거든요. 오래된 사물이나 여러 사람이 거쳐 간 공간을 관찰하는 걸 좋아해요. 그 안에 내가 절대 알 수 없는 역사와 이야기가 있다는 점이 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키고 그게 바로 제가 그림을 그리는 촉발제가 돼요.


빈 종이를 꺼내 미지의 방이 가진 이야기를 마음껏 상상해보고 이리저리 가구도 놓아봐요. 그렇게 차츰 공간이 꾸려지고 방이 완성됩니다. 공간(空間)이란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빈 곳이지만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곳이잖아요. 그걸 만들어가는 게 참 흥미진진해요. 이렇게 줄곧 해오던 생각들을 글과 그림으로 벼려내 독립출판물로 만들어 더 기억에 남는 작업입니다.



©4kimbobae




작화와 작업 방식에 많은 변화를 주시는 편인데, 돌고 돌아 미니멀한 작화를 추구하게 되신 계기가 궁금해요.

평소 좋아하는 것들이 많아요. 그림 중에서도 섬세한 세밀화, 단순한 선화, 색이 돋보이는 그림 등 다 각자의 매력이 있잖아요. 이렇게 좋아하는 표현 방법이 많다 보니 선으로만 이루어진 깔끔한 그림도 그렸다가 좀 더 디테일이 많은 그림도 그려보고 매번 작업물이 조금씩 달라져요.


그러다 보니 나만의 확고한 그림 스타일이 없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하지만 그게 문제라고 보지는 않아요. 한 가지 스타일에 집중하기보단 여러 가지를 탐구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가고 싶어요. 표현은 다양할 수 있어요. 다만 지키고 싶은 한 가지는 보면 볼수록 이야기가 피어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점이에요.



최근에는 레터프레스 작품들을 많이 작업하시죠, 정말 잘 보고 있어요.

레터프레스 정말 매력 있죠! 레터프레스는 잉크를 종이에 바로 찍어내 화려하고 선명한 색부터 빈티지한 느낌까지 다양하게 연출이 가능해요. 그리고 두꺼운 종이에 판이 찍혀 생기는 올록볼록한 요철 또한 매력이에요. 밋밋한 인쇄물이 아닌 입체감을 가진 오묘한 그림이 완성되는 거죠. 얘기하다 보니 또 다시 새로운 레터프레스 작업을 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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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보면 실크스크린 같기도 한 채색법과 특유의 색감을 표현하실 때 신경 쓰시는 부분이 궁금해요.

옛 동서양의 판화 작품들이나 빈티지 서적 보는 걸 좋아하거든요. 오래된 인쇄물에 보이는 망점과 특유의 질감, 인쇄가 서로 어긋나 생기는 표현들이 좋아 제 그림에 차용해보기도 해요.


색감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을 하는데요. 일상에서 마주치는 풍경이나 물건들, 웹서핑 중 보게 된 사진 등 제가 접하는 모든 이미지에서 색의 조화와 구성을 눈여겨보게 돼요. 그런 것들을 기억해놓았다가 그림에 적용해보기도 하고, 작업 시 여러 번 수정을 하며 최적의 색감을 찾아가는 재미가 있어요.




작가의 가치관



요즈음은 ‘사람’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하고 있으신 듯해요. 먼저 그림책 ‘나만 혼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나만 혼자’는 제 경험에서 비롯된 책인데요. 대학 시절 지방을 떠나 서울살이를 시작하게 됐어요. 온종일 친구들과 왁자지껄 몰려다니던 고등학생 때와는 달리 서울에서의 생활은 조금 외로웠어요. 친구들은 뭐가 그리 바쁜지 서로 시간 맞추기가 어려워 어느샌가 혼자 밥 먹고 혼자 수업 듣고 저 혼자 놀고 있더라고요. 근데 그게 나쁘지만은 않았어요. 혼자여서 편안하고 좋은 순간, 혹은 외로운 순간을 그림으로 담았고 그 경험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책으로 만들게 됐어요. 그림 속 짝지어 모인 인파들 속에서 혼자인 제 모습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답니다. 많은 분이 공감해 주셔서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하는 위로도 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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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빌라’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간에 집중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맞아요. 나무와 꽃이 핀 들도 좋지만 사람 손을 탄 것들에 더 관심이 많아요. 사람이 사용하는 물건이나 장소에는 누군가의 흔적이 남기 마련이잖아요. 그것들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제멋대로 상상하고 그림으로 그려보곤 해요. 제가 바라는 건 사람들이 제 그림을 한번 보고 슥 지나치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각자 마음껏 상상해보았으면 하는 거예요.




작품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으신가요?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이 그대로 전해지지 않아도, 제가 만들어놓은 이야기와 일치하지 않더라도 상관없어요. 제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그들만의 이야기를 떠올려가며 오랫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 좋겠어요. 그런 게 소통의 또 다른 방법 같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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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의 작품세계에 영향을 주는 것들이, 사람들이 궁금해요.

오래전부터 존재하던 모든 것들이 저를 이루고, 또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작품을 제작하실 때 제일 염두에 두는 포인트를 알려주세요.

말하려는 게 정해지고 나면 가장 염두에 두는 건 구성과 색감이요. 실제로 방에 가구 배치하듯이 그림 속 사물들을 이리저리 옮겨 마음에 드는 조합을 찾아보곤 합니다.




작가의 성장



작가님의 출판물 특유의 분위기가 너무 좋아요. 새로운 출판물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어도 될까요?

네, 그럼요. 새로운 독립출판물을 구상하며 조금씩 그림을 그려가고 있어요. 이번에도 역시 방에 관한 작업이고요. 외주 작업과 병행하다 보니 책의 형태로 만나볼 그 날이 아직은 까마득한데요, 올해 안에 선보일 수 있도록 열심히 작업해보겠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4kimbobae




앞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작업의 방향이나, 새롭게 기획하고 있으신 재미있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공유해 주세요.

계속해서 저의 관심사인 사람과 공간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나갈 예정입니다.



사람과 공간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가님이신데, 코로나로 인해 오프라인 공간에서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없어 아쉬운 점이 정말 많으실 것 같아요. 이후에 오프라인에서 해보고 싶은 전시가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제가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인 통의동 보안여관이 생각나는데요. 1940년대 지어져 예술가들이 머물며 쉬다 간 여관이었다고 해요. 여기에 들어서면 지금은 사라진 어릴 적 할머니 댁도 떠오르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 곳이에요. 이렇게 세월이 차곡차곡 쌓인 장소에서 전시를 해보고 싶어요.


작가님의 궁극적인 목표가 궁금해요. 사람들에게 어떤 작가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나요?

글쎄요. 사실 이 질문을 듣고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문득 궁금해졌어요. 저한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간에 집중하고 있다는 인터뷰어님의 말씀처럼, 다른 분들의 생각이 궁금하네요. 하하.




©4kimbobae




TMI PARTY 🤹‍♂️



작가님의 작품을 세 가지 키워드로 말해주세요.

일상, 공간, 이야기.



‘풍경빌라’ 6가구 중 한 가구의 가구원이 되어야만 한다면, 몇 호에서 살고 싶으신가요?

너무나 반가운 질문이네요! 실제로 가지고 싶은 꿈 꾸던 방이 있거든요. 제가 ‘풍경빌라’ 작업을 할 때, 방마다 그 공간의 주인인 가상의 인물을 만들고 그를 생각하며 그림을 그렸어요. 제 주변 인물에 착안해서 캐릭터를 만들어내기도 하고요.


그런데 302호만큼은 제가 살고 싶은 방을 생각하며 그렸어요. 책 모으는 걸 좋아해서 내 취향의 책들로 가득 찬 방에서 한가롭게 책을 들여다보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가끔은 친구들을 초대해서 넓은 식탁에 둘러앉아 맛있는 음식과 함께 수다도 떨고 싶고요. 그 당시엔 그러기가 어려운 환경이었어요. 시간이 흘러 지금은 302호와 엇비슷하게 닮은 집에 살고 있어요. 하하



풍경빌라 302호 ©4kimbobae



풍경빌라 101호 ©4kimbobae



평소에는 어떤 것들을 좋아하시는지 궁금해요.

오래된 것, 그리고 커피와 빵. 길을 걷다가도 세월이 담긴 건축물과 아파트를 보면 발걸음을 멈추고 바라보게 돼요. 시간 속에서 낡아진 만큼 그것이 가지고 있을 수많은 이야기가 궁금해요. 요즘엔 외출이 많지 않아 주로 집에서 편안하게 누워 웹에 접속해 낡은 것들을 감상하곤 합니다. 거기에 맛있는 라떼 한 잔과 빵을 곁들인다면 더할 나위 없는 날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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