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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빈소연, 현대사회의 귀퉁이를 펴내다


©leebinsoyeon

Editor comment


‘32마리의 이빨 요정들은 밤마다 깨어나 그녀를 잠식하고, A씨의 계획은 어그러지기 시작하는데...’


벌써부터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지는 <Love Education> 소개말의 마지막 문장이다. 이빈소연 작가는 주로 우리 사회 귀퉁이에 있는 일들을 비틀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데, 그 이야기 속 주인공의 엉뚱한 모습에 웃음이 나오다가도, 어쩐지 우리의 모습과 다를 바 없어 결국 공감하게 된다.


작가님은 인터뷰에서 작품을 만들 때 다른 부수적인 것보다 ‘왜’에 집중한다고 했는데, 작품의 본질에만 집중하는 모습이 마치 그가 닮고 싶다던 <shape of shame>의 모든 것에 초연한 친구와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early 인터뷰는 그의 작품처럼 솔직하고 유머 넘쳤던 현장의 분위기가 지면에서도 가득 느껴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구성해보았다.



Interview



이빈소연


"제가 좋아하는 주제를 이전보다

확실히 알게 된 것 같아요.

현대 사회의 중심이 아닌,

귀퉁이에 붙어있는 듯한 이야기에 대해

만드는 게 재밌더라고요."



작가와 작품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일러스트레이터 겸 만화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빈소연이라고 합니다.



먼저 작가님의 시작이 궁금하네요. 그림을 그리는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처음에는 학교 선배와 작업실에서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했어요. 선배는 디자인을 하고 저는 일러스트를 한 것이 시작인 것 같습니다.




본격적으로 작업을 하게 된 계기가 있을 것 같아요.

디자인 스튜디오를 정리하고 광고 회사에 한 달 반 정도 다녔는데, 그 회사에서 퇴사하고는 하고 싶은 걸 하는 데 시간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하고 싶은 걸 한다’라는 말이 낭만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당시 저에게는 하나의 선택지였던 것 같아요.



<how is mayo enlightened2> ©leebinsoyeon



그럼 지금은 어떤가요? 충분히 하고 싶은 것들을 하고 계시는지 궁금해요.

하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걸 한다’라는 개념이 옅어진 것 같아요. 일을 한다는 점이 만족스러워요.



작품에 대한 얘기를 해 보려 해요. 먼저 <모든 것의 시간>이 구상된 배경에 대해 듣고 싶어요.

<모든 것의 시간>은 학교 다닐 때 같은 반 애를 생각하며 만들었어요. 그 친구는 심한 곱슬머리에 짧은 숏컷을 하고 다녔는데, 그 이미지가 당시에는 무섭다고 느꼈어요. 친해질 수 없다고 속으로 선을 그었던 거죠.

커서 다시 생각해 보니 ‘내가 왜 그랬지?’ 싶었어요. 제가 여성의 모습에 대해 낡은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게 사실은 아니었다는 것을 크면서 깨달은 거죠. 그 당시 이런 내용을 다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이야기를 만들게 됐어요.




그 당시부터 지금까지 작가님만의 스타일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어떻게 지금의 화풍을 가지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예전에는 스타일, 화풍을 작업의 최우선으로 두었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그에 관한 생각을 특별히 안 하게 된거죠.


저도 최근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작가분들을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어요. 원래 스타일에 관해서는 잘 안 물어보는 편인데, 어떻게 이런 화풍을 가지게 된 것인지 여쭤봤거든요. 그런데 그분들도 '그런 역사를 명확히 기억하기보다 자연스럽게 지금에 오게 된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아무래도 지금은 튀어야 한다거나, 유일무이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지지 않았나 싶어요.




내공이 쌓이며 많은 부분 여유가 생겼다고 볼 수 있겠어요.

그러면서 오는 한계도 있는 것 같아요. ‘나는 이렇게만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이렇게 하는 게 편하구나’에 머무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래서 부지런히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고 재료도 다양하게 써보려고도 해요.

요즘 가장 첫번째 우선순위를 차지하는 건 '내용'인 것 같아요. '이 내용을 어떻게 그리면 될까'가 작품을 만들 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인거죠.



<Love education> ©leebinsoyeon



그래서인지, 신작 <Love Education>에서도 여러 가지 시도를 하신 것으로 보여요. 여러 형식이 섞여 신선하게 와닿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주제를 이전보다 확실히 알게 된 것 같아요. 현대 사회의 중심이 아닌, 귀퉁이에 붙어있는 듯한 이야기에 대해 만드는 게 재밌더라고요. <Love Education>은 저와 대중문화의 화해를 그린 아트북이라고 할 수 있어요.




‘대중문화와의 화해’라,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예전에는 TV였다면, 요즘에는 다들 폰으로 연예인을 보잖아요. 이렇게 미디어가 저에게 지속적으로 남자를 소개해 줘요. 유튜브에서 어떤 연예인이 나온 클립을 보다 보면 그 아래로 알고리즘을 통해 또 다른 인물들이 홈쇼핑 채널처럼 기다리고 있어요. ‘이 남잔 어때?’ 이러면서. 그러다 액정을 보며 ‘귀엽다...’라고 말하는 저를 발견하게 된 거예요. 그게 나쁜 건 아니지만 왜 이 알고리즘을 탈출하지 못하는 거지? 생각한 적이 있어요.


<Love Education>은 핸드폰으로 미디어가 소개하는 남자를 보고 있는 제 모습에서 착안한 거예요. 작품에서 주인공에게 아주 예쁜 남자가 배달이 돼요. 화자는 치과 의사인데, 핸드폰 자판이 32개잖아요, 치아도 32개고. 그 점을 대입해 그려 보았어요. 전문직의 화자가 진단서에 쓰는 내용이 진료 기록이었다가 점점 남자에 대한 신변잡기만 쓰게 되는데, 남성의 치아들은 알고 보면 이빨 괴물이라, 여자가 잠들어 있을 때마다 나타나서 잠식하는 활동을 해요. 이를 못 견딘 화자는 남자 치아를 다 부숴버리게 되는데, 이게 제 방식대로의 미디어, 핸드폰과의 화해예요.



그래서 작품에서 유튜버가 자주 등장하는 걸까요?

유튜브를 한창 볼 때가 있었어요. 저는 유튜브 댓글 보는 걸 좋아하는데, 그걸 읽다보니 유튜브에 담긴 현대사회의 모습이 흥미로웠어요. 제가 <모든 것의 시간>을 그리고 나서는 코믹물을 그리고 싶었거든요. 유튜버를 주제로 시트콤 형식의 만화를 하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죠. 제가 미국 시트콤의 정말 뻔하디 뻔한, 30분 분량 중 28분 정도는 여기저기 사건이 터지다 마지막 2분 동안 모든 문제를 인간애로 해결(외면) 해버리는, 애초에 무엇도 문제였던 적이 없는 듯한 상황으로 만들어버리는 느닷없음을 좋아하거든요.




작가의 가치관



이쯤 들으니, 작가님께서 작품을 대할 때 어떤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지가 궁금해져요.

일러스트의 경우, 외주라면 의뢰가 들어온 ‘내용’이 잘 보여야 하는 게 가장 중요하고, 개인 작업을 할 때는 ‘왜’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개인 작업을 할 때는 왜 그려야 하고, 왜 존재해야 하는지 스스로 이해하는 과정이 추가돼요.



만화의 경우는 어떨까요?

만화는... 예전에는 그냥 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재밌는 만화를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커요. 제가 만화를 정식으로 배운 게 아니라서, 동료 작가분들에게 많이 배우며 작업하고 있어요.



<Shape of Shame ep1. The Third eye> ©leebinsoyeon





작가의 성장



요즘에는 어떤 작업을 하시나요?

전시 준비와 만화, 그림책 작업을 하고 있어요.



운영하고 계신 '유연성 클럽'의 근황을 들려주세요.

전시 <비명횡사>의 도록을 작업하고 있고, 6월부터 시작되는 팝업샵에도 참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비명횡사 非命橫死 : 사라지는 것들 Deadly Blow] ©leebinsoyeon



양초로 오브제 작업을 하신 것을 보았어요. 느낌이 좋던데요?

네, 오브제를 만드는 것에 늘 관심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번에 양초 전시랑 맞물리면서 제대로 작업해본 것 같아요. 작업에서 파생된 상품의 생산은 줄이고 작업과 함께 가는 오브제 작업을 좀 더 해보려 해요.



양초 오브제 작업 / 사진 심해지

©leebinsoyeon




아쉬운 부분은 없으신가요? 그림 그대로를 보여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림과는 매체가 달라 보이지 않는 부분이 생길 테니까요. 좋은 부분도 있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글쎄요, 누가 봐주고 좋아해 준다면 당연히 너무 좋겠지만, 아쉽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스스로 많은 답을 찾으신 것 같아요. 그럼에도 여전히 고민인 지점이 있으실까요?

매일 다양한 지점을 고민해요. 작업과 관련된 갖가지 생각들. 요샌 디지털 형식의 그림을 오프라인에서 어떻게 보여주는 게 좋을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Accelerator> ©leebinsoyeon



느끼한 걸 싫어하신다는 것을 알지만, 마지막으로 작가님께 낭만적인 순간은 언제인지 궁금해지네요.

출판사 일을 할 때 인 것 같아요. 출판사 직원분들과 일을 하다 보면 제가 제대로 쓸모 있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거든요. 개인 작업을 하다 보면 ‘내 그림이 왜 존재해야 하지’라는 질문을 계속 하게 된단 말이죠. ‘이게 굳이 필요한가’ 싶은... 출판사 일은 글 작가, 편집자, 디자이너와의 협업이니까 그 과정 안에 있으면 내가 무언가를 그려야 하는 이유가 타당하다는 데에서 오는 안락함이 있어요. 편집자, 글 작가 분들의 전문성에 기댈 수도 있고요. 외주 일을 할 때면 ‘내가 사회에서 한 기능을 하고 있구나’ 하는 순간들이 제게는 낭만이에요.



그럼 작품이 독자들에게 특별히 어떻게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이 있으신가요?

바라는 건 '앞으로 나올 만화가 재밌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하하하. 근데 이건 제가 해야 하는 부분이겠죠?



<healing biscuit> ©leebinsoyeon




TMI PARTY 🤹‍♂️


Shape of Shame의 <The Third Eye>에서는 ‘요가’라는 소재가 나오는데요! 작가님도 실제로 요가를 좋아하시나요?

아니요. 예전엔 요가를 엄청 좋아했는데, 이제는 거의 안 하게 돼요. 제가 명상과 요가를 좋아하던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점점 명상은 졸리기만 해서... 명상을 안 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요가도 안 하게 되었죠. 대신 보다 더 격렬한 뭔가를 하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쿵후를 배우려고 했었는데, 코로나 터지면서 기회가 없어졌어요.

(그런데 이 인터뷰가 끝난 후, 요가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작가님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저는 온갖게 다 무서워요. 자동차도 무섭고... 무단횡단하는 사람들을 보면 되게 신기하고요. 아, 뾰족한 것을 잘 못 봐요. 또 얇은 종이 같은 거, 베일 것 같아서...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도 무슨 내용인지 모르지만 눈에 뭔가 씌운 듯한 스틸컷 때문에 한참 동안 안 봤어요.


<newyearresolution> ©leebinsoyeon



직접 그리신 작중의 많은 인물들 중 제일 좋아하는 인물은 누구인지 궁금해요.

되고 싶은 인물은 <shape of shame>에 나오는 친구. ‘음 뭐든 상관없다’ 마인드를 가지고 사는 친구거든요. 저도 웬만하면 그렇게 살려고 해서요.

좋아하는 인물은 <Shape of Shame>의 주인공이에요. 찌질한데, 찌질하기 싫어 고군분투하는 게 전 애정이 가고 좋더라고요.




<Shape of Shame ep2. Spark Joy> ©leebinsoyeon




코로나 때문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어떤 부분일지 궁금해요.

해외여행을 못 가는 것이요!



작가님은 쉬는 시간에 주로 무엇을 하시나요?

쉬는 시간이라... 제주도의 대자연 속에서 제가 미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느끼고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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